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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드라마를 틀게 된 건 솔직히 줄거리보다 캐스팅 소식 때문이었는데, 실제로 보고 나니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첫 화 20분 만에 확신했습니다. 20년째 책 한 권 내지 못한 문학 교수와, 강의실 맨 끝줄에서 조용히 모든 것을 훔쳐보는 학생. 넷플릭스 드라마 《맨 끝줄 소년》은 이 한 줄 설정만으로도 뭔가 예사롭지 않겠다는 예감을 줬습니다.

등장인물
- 허문오 (배우: 최민식)
배역: 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한때 작가를 꿈꿨으나 실패한 열등감과 권태를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학생들의 형편없는 과제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강의 천재적인 글쓰기에 매료됩니다. 소년의 글에 점차 중독되어 집착과 열망으로 변해가는 중년 교수의 복잡하고 처절한 심리를 최민식 배우 특유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눈빛으로 완벽하게 그려냅니다.
- 이강 (배우: 최현욱)
친구의 가정을 은밀하게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허문오 교수를 자극하는 글을 써 내려갑니다. 예술과 위험한 관음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인물로, 대배우 최민식 앞에서도 밀리지 않는 최현욱 배우 특유의 날 서고 묘한 미스터리한 아우라가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최민식 씨와 최현욱 씨가 함께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이 조합이 과연 어떻게 맞물릴지 반신반의했습니다. 대한민국 연기의 최정점에 있는 베테랑과 이제 막 대세로 올라선 20대 배우가 한 화면에서 팽팽하게 맞붙는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됐거든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 의심은 첫 강의실 씬이 끝나기도 전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드라마의 축은 두 사람의 사제관계(師弟關係)입니다. 여기서 사제관계란 단순히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욕망의 구조를 말합니다. 허문오(최민식)는 20년간 신작을 내지 못한 실패한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그는 이강(최현욱)이 맨 끝줄에서 써내려가는 날 것의 관찰기에 매료되면서, 그 글을 과거 자신에게 모욕을 안긴 동기 김수훈을 무너뜨리는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가 포착하는 것은 창작적 영감(靈感), 즉 인스피레이션의 어두운 이면입니다. 영감이란 보통 순수한 예술적 자극으로 이야기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것이 타인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행위와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 놓여 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허문오가 이강의 글에 손을 댈수록, 그의 도덕적 신념은 조금씩 무너지고 두 사람은 공범 관계로 깊숙이 얽혀 들어갑니다. 최민식 배우의 연기가 빛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괴팍함과 처절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그 표정 하나하나에서, 저는 화면 앞에서 몇 번이나 숨을 참았습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이며,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인 더 하우스〉(2012)로도 한 차례 영상화된 바 있습니다(출처: IMDB - In the House). 원작 희곡과 영화가 관음(觀淫)의 경계가 흐려지는 심리적 과정에 집중했다면, 한국 드라마판은 여기에 스릴러와 복수극 문법을 덧입혔습니다. 관음이란 타인의 삶을 몰래 엿보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것이 글쓰기라는 예술 행위와 교묘하게 뒤섞이면서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서부터가 침범인가"라는 질문을 시종일관 던집니다.
- 원작 희곡(후안 마요르가) 및 영화 〈인 더 하우스〉: 관음과 창작의 경계 붕괴에 집중한 심리극
- 한국 드라마판: 허문오의 첫사랑, 김수훈과의 열등감, 선민이 사건 등 복합 갈등 구조로 확장
- 공통점: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글쓰기가 결국 쓰는 자 자신을 집어삼키는 아이러니
반전 구조와 열린결말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앉아 있었던 건 결말 이후였습니다. 이강이 단순히 허문오를 따르는 총명한 제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만의 목적과 상처를 품고 교수의 욕망을 역으로 설계한 인물이라는 반전은, 최현욱 배우가 내내 풍겼던 그 묘한 미스터리함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를 단번에 납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느낀 건, 좋은 반전이란 "몰랐다"는 놀라움이 아니라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납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는 내러티브 반전(Narrative Twist)이라는 장치를 사용합니다. 내러티브 반전이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독자 혹은 시청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인물 관계나 사건의 인과를 완전히 뒤집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이강의 반전이 효과적인 이유는 뒤집힌 뒤에도 앞서 쌓인 모든 장면이 새롭게 재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 정도의 밀도로 복선을 깔아두는 국내 드라마는 흔치 않았습니다.
열린결말(Open Ending)도 이 드라마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열린결말이란 이야기가 명확한 종결 없이 마무리되어, 해석의 여지를 시청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헌책방 점원으로 일하게 된 허문오 앞에 이강이 다시 나타나 문학 수업을 요청하는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이 서로를 파멸로 이끌었으면서도 끝내 서로를 놓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남겨둡니다. 저는 그 침묵이 어떤 대사보다 많은 말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 관계는 공생적 집착(Symbiotic Obsession)에 가깝습니다. 공생적 집착이란 두 개체가 서로를 해치면서도 상대 없이는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심리적 의존 구조를 말하는데, 드라마는 그것이 얼마나 기묘한 해방감을 동반하는지를 두 배우의 눈빛만으로 설명해냅니다.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교 문학 연구에 따르면, 창작자와 편집자 혹은 스승과 제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의존은 일반적인 대인관계보다 훨씬 강한 정체성 혼합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Stanford University - Department of English). 이 드라마가 그 경계를 얼마나 정밀하게 건드리는지, 직접 보지 않고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총평
평소 막장 드라마나 로맨스에 조금씩 질려가던 저에게, 《맨 끝줄 소년》은 오랜만에 "이런 드라마가 한국에서도 나오는구나"라는 감각을 되살려준 작품입니다. 창작이 얼마나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영역인지, 그리고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이토록 날카롭게 건드린 드라마는 근래에 없었습니다. 두 배우의 미친 심리전을 편한 시간, 편한 장소에서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생각보다 중간에 일어나기 어렵거든요.